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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 63] 영남대 김화경 교수著, 역사적 관점에서 독도영유권 입증

글쓴이
산학연구기획팀
등록일
2011-05-30 10:15:20
조회
5998
화제의 신간 『독도의 역사』
‘고유 영토론’은 신화(神話)에 근거한 허구
[2011-4-3]
 
 최근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사회교과목 교과서의 검정결과를 발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음을 가르치겠다”는 정책을 공표함에 따라 한‧일 외교관계가 또다시 경색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영남대 김화경 교수(64,국어국문학과)가 『독도의 역사』(영남대학교출판부, p.397 표지제외)를 펴내 일본의 주장이 왜 잘못되었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를 논리적으로 밝혀 주목받고 있다.
 
 영남대 독도연구소장이기도 한 저자는 독도가 ''국제법적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문제''라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독도를 국제법상의 영유권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을 논리를 찾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일본은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으로 부각시켜, 이것을 국제법적인 문제로 끌고 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려는, 무서운 암수가 숨어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저자는 울릉도에서 가시거리 내에 독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근거해 독도가 우산국 사람들의 생활공간이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추정은 국경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보이는 곳까지가 삶의 터전’이었다는 관습에 근거한 것이며, 이러한 공간인식은 사이토의 <인슈시청합기>에도 그대로 존속되고 있었음을 밝혀 한․일 양국의 공통된 인식이었음을 규명하고 있다. 그리고 독도에 ‘우산도’라는 이름이 정착되는 과정을 고찰해 󰡔세종실록󰡕 지리지가 찬술될 무렵, 한국의 영토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정착됐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울릉도 쟁계’(1693년 박어둔과 안용복이 요나고(米子)의 무라카미 집안(村上家) 어부들에게 납치됨에 따라 울릉도의 어업권과 영유권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朝․日 분쟁)의 해결과정에서 일본의 막부가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를 하나의 세트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막부는 울릉도를 조선의 땅으로 인정하고, ‘죽도(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내렸는데, 그 근거가 조선과 일본으로부터 울릉도까지의 ‘거리’였다. 다시 말해 “(울릉도가) 조선에 거리도 가깝고 호키로부터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따라서 울릉도에 가까운 독도 역시 조선 땅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라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형성된 독도에 대한 영토 인식이 숙종 때 이미 완결됐음을 밝히고 있다. <숙종실록> 보궐 정오편 숙종 40년(1714년) 조에 실린 “울릉의 동쪽에 서로 섬이 마주 보이는데, (이 섬이) 왜와의 경계에 접해 있다”는0 기록을 근거로 저자는 이미 숙종 때부터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이 선언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일본 측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되는 논리인 ‘무주지 선점론’과 ‘고유 영토설’, ‘17세기 인지설’ 등이 사실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독도를 강탈하기 위한 만들어낸 구실에 불과함을 구체적 자료들로 입증하고 있다. 일례로 독도를 원래 자기들의 고유 영토였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고유 영토론’은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郞)가 이토 미요지(伊藤己代治) 문서에서 찾아낸 <제국판도(帝國版圖)> 에 나타난 ‘고유’의 의미, 즉 “제국의 고유 영토는 신화(神話)에 있는 대로 혼슈(本州)와 규슈(九州), 시코쿠(四國), 아와지도(淡路島)이다”라는 데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혀낸 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신화에 바탕을 둔 고유 영토론을 주장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며 일본 측 주장의 논리적 허구성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고찰을 통해 저자는 우산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인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15세기 이래 지속된 지리적 인식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8장에서 저자는 ‘독도를 강탈하기 이전에 일본에서는 독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탐구한 결과, 1869년 사타 하쿠보(佐田白茅) 일행이 외무성에 제출한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에서 분명히 “죽도와 송도가 조선의 부속이 된 시말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이는 메이지(明治)정부도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연구과정에서 독도는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가 분명하다는 명제를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일본이 사리에 어긋나는 논리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우를 범하는 처사”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거듭 말하지만 독도는 역사적인 문제이지 국제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관점에서 그 영유권을 규명해야 한다. 국제법적으로 해결할 하등의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김 교수는 『독도의 역사』를 4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독도를 만나다’ 개막식에 참석하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전달하고, 독도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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