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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표기와 한글 N
No.1224129- 작성자 김태환
- 등록일 : 2015.07.07 14:44
- 조회수 : 319
토착화된 한자로 1,500년 기록해 오는 동안 한국어는 고유어층에 한자어층이 축적되었다. 받아들인 한어, 필요에 따른 신조어들이 19세기 말부터 새로운 문물, 학문을 따라 일본의 한자역어들이 엄청나게 들어와 겹쳐져 한자어층은 어휘의 70%, 특히 지식어의 거의 전체를 점하는 넓이와 두께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한자어층은 고유어휘와 서로의 장점을 삻려 조화를 이루면서 한국어를 문명어로 자라게 했다.
일본의 한자 역어와 함께 영어를 중심으로 한 서가어들도 들어와 한국어에는 한자어층 위에 새로 서가어틍이 추가된다. 서가어층은 좡복후에 급속하게 그 폭이 넓어져 학문의 전 분야에서 그 위세가 날로 커지고 있는데, 고유어휘 한자어층의 조화와 달리 이 서가어층은 한자어층과 여러면에서 충돌 양상을 보인다. 이 충돌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느냐가 한국어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다.
560년 전 세종이 창제한 한글의 주된 표기 대상은 고유어층이었다 . "국지어음흥여문자불상류통고...."의 '국지어음'이 그것이요, "고유만...위...신제이십팔자"가 그것이요,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서, 최우리의 창제 반대 상소와 이에 대한 세종의 비답 등에서 한글이 사두를 대신하는 것이라는 생각, 한자어층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본다.
우민의 실용을 위한 '훈민정음'은 음소문자다. 그러나 그것은 음절로 모아서 쓴다. 음절 합자법은 한글을 한자와 함께 쓰기 위한 절묘한 발상이다. 이렇게 해서 고유어와 그 곡용활용의 표기를 한글이, 한자어층의 표기를 한자가 담당하여 한국어의 전면적 표기가 가능해진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국가적으로 티중한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이 그 본이다. 만약에 한글이 실제로 우민들의 실용문에 국한한 고유어층 표기의 음소문자로만 쓰여 왔다면, 그 존재는 생각할 수 없이 초라했을 것이다.
20세기 초 주시경으로 비롯되는 한글전용 주장은 국수주의에서 출발한다. 그 사상은 한국어를 고유어층만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자어가 된 고유어를 찾아쓰는 것을 넘어 '몬(물체)', '노(공기)' 같은 낯선 말을 쓰는 억지를 자행한다. 한국어에서 한국어층을 몰아낸다는 생각은 용인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고유어층과 한자어층의 조합으로 문명어가 된 한국어를 원시로 되돌리는 것이다.
한국어를 고유어층으로 되돌리려는 생각과 함께 한글 '가로풀어쓰기'를 제안한 그들이기도 한다. 세종의 한글 창제를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하면서 이것을 alphabet과 같게 고치자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기계화'였지만 한자와의 병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가로풀어쓰기'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무도 '가로풀어쓰기'를 말하지 않는다. 컴퓨터의 발달이라는 '기계화'가 한글의 '기계화'라는 구실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까딱했으면 한글전용 주장자들에 의해 한글이 큰 재앙을 입을 뻔헸다.
[어문생활 2006. 5]
일본의 한자 역어와 함께 영어를 중심으로 한 서가어들도 들어와 한국어에는 한자어층 위에 새로 서가어틍이 추가된다. 서가어층은 좡복후에 급속하게 그 폭이 넓어져 학문의 전 분야에서 그 위세가 날로 커지고 있는데, 고유어휘 한자어층의 조화와 달리 이 서가어층은 한자어층과 여러면에서 충돌 양상을 보인다. 이 충돌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느냐가 한국어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다.
560년 전 세종이 창제한 한글의 주된 표기 대상은 고유어층이었다 . "국지어음흥여문자불상류통고...."의 '국지어음'이 그것이요, "고유만...위...신제이십팔자"가 그것이요,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서, 최우리의 창제 반대 상소와 이에 대한 세종의 비답 등에서 한글이 사두를 대신하는 것이라는 생각, 한자어층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본다.
우민의 실용을 위한 '훈민정음'은 음소문자다. 그러나 그것은 음절로 모아서 쓴다. 음절 합자법은 한글을 한자와 함께 쓰기 위한 절묘한 발상이다. 이렇게 해서 고유어와 그 곡용활용의 표기를 한글이, 한자어층의 표기를 한자가 담당하여 한국어의 전면적 표기가 가능해진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국가적으로 티중한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이 그 본이다. 만약에 한글이 실제로 우민들의 실용문에 국한한 고유어층 표기의 음소문자로만 쓰여 왔다면, 그 존재는 생각할 수 없이 초라했을 것이다.
20세기 초 주시경으로 비롯되는 한글전용 주장은 국수주의에서 출발한다. 그 사상은 한국어를 고유어층만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자어가 된 고유어를 찾아쓰는 것을 넘어 '몬(물체)', '노(공기)' 같은 낯선 말을 쓰는 억지를 자행한다. 한국어에서 한국어층을 몰아낸다는 생각은 용인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고유어층과 한자어층의 조합으로 문명어가 된 한국어를 원시로 되돌리는 것이다.
한국어를 고유어층으로 되돌리려는 생각과 함께 한글 '가로풀어쓰기'를 제안한 그들이기도 한다. 세종의 한글 창제를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하면서 이것을 alphabet과 같게 고치자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기계화'였지만 한자와의 병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가로풀어쓰기'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무도 '가로풀어쓰기'를 말하지 않는다. 컴퓨터의 발달이라는 '기계화'가 한글의 '기계화'라는 구실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까딱했으면 한글전용 주장자들에 의해 한글이 큰 재앙을 입을 뻔헸다.
[어문생활 200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