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이용 후기 공모전 장려상3 작품 '개인상담 후기' N
No.1514423학생상담센터 이용후기
2020학년도 이용 후기 공모전 장려상 작품
(학과 이름 등 개인정보를 제외함)
Beyond The Limit
힘들었던 수험생활을 끝내고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원했던 진로와 전혀 관련이 없는 학과에 입학한 상태였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대학만 가면 다 잘 될 것이다.’ , ‘일단 대학부터 가자’ 라는 말을 순진하게 믿고 공부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특히 처음 전공 및 교직 수업을 듣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입학 당시 성적우수자 자격으로 장학금을 받았던 만큼 당연히 적응을 잘 할 거라고 믿었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동기들이 자연스레 문제를 풀고 의견을 당차게 제시하는 모습에 마치 스스로가 한낱 이방인처럼 느껴지고 초라해보였다. 그렇게 나는 낮은 성적, 소외감, 방황만을 남기고 새내기의 첫 시작을 마무리했다. 원래는 휴학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나에게 ‘대학생, 성인’이라는 짐은 너무나도 버거웠기 때문에 결국 남들보다 좀 이른 시기에 휴학을 결심하고 말았다.
처음 휴학을 결심했을 땐, 마치 석방이라도 된 듯이 행복하기만 했다. 마음의 병이 곪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냥 학교를 쉬기만 하면 또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교 동기들을 비롯해 학창시절 친구들이 하나둘씩 성과를 이뤄가는 모습에 불안감은 다시 재발했다. 나는 남들보다 1~2년은 더 늦은 나이로 사회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 친구들은 나보다 더 좋은 스펙 및 어린 나이로 취업 시장에 뛰어든다고 생각하니깐 괜히 조바심이 나서 혼자 엉뚱한 계획을 마구 세웠다. 학교를 자퇴한다, 전과를 하겠다, 다른 기술을 배우겠다 등등 혼자 열심히 계획을 세웠지만 막상 실행할 용기도 없었고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도할 만큼 당시 나는 강단 있고 똑부러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전혀 흥미가 없는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해야 할까? 그런데 우리 학과는 취업 목적으로 만들어진 학과가 아니잖아. 임용 얘긴 들어봤어도 취업 쪽으로는 들은 기억이 없어. 내 인생은 잘못된 걸까?’ 같은 부정적인 생각만 내내 하면서 항상 울다가 지쳐 잠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너무 막막해서 인터넷에 교내취업정보를 찾아보고자 했는데, 가장 먼저 뜨는 것이 바로 ‘영남대학교 어울림’ 홈페이지였다.
내가 기대했던 정보는 아쉽게도 못 찾았으나 심리, 진로, 취업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혹했다. 나는 그 당시 심리상태가 매우 불안정했기에 심리상담을 1차적으로 받은 후, 취업상담을 받길 원했다. 심리상담에선 학년과 무관하게 현재 내가 고민하는 게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를 중점으로 다루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받는 상담인지라 살짝 긴장되기도 하고 혹시나 나를 이해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걱정되고 불안했다. 하지만 상담사분께선 내 얘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귀 기울여 주시고 상담을 마치고 나선 전공이 다가 아니니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격려를 해주셨다. 그땐 별로 와닿지 않았고 내 고민을 부정하는 게 아닌가 라는 비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좀 더 전문적인 상담인 것 같아서 취업 상담을 신청해서 또다시 학교를 찾아갔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상담사분께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시고, 마치 내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로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전과를 고려중인데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학교를 옮기는 것도 생각해봤다.’ 라는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지만 ‘그래서 학생이 뭘 할 건데요?’ 라는 반응뿐이셔서 서운하기도 했다. 덧붙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은 시간낭비나 다름없다, 학교 간판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복수전공을 해서 너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라고 하셨는데 그 ‘시간낭비’라는 단어가 굉장히 큰 상처로 다가왔다. 중요한 건 속도보단 방향이 아닌가? 이런 고민조차 못 하는 걸까? 내가 지금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기대 이하의 상담 시스템에 실망하고 학교를 나오는데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인생에서 한 번뿐인 20대 초반을 이렇게 재미없고 어렵게 보내는 것도 싫었고, 뭣보다 성인이면서 고민하는 수준은 어린 아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시절 진로를 고민할 때 ‘대학만 잘 가면 알아서 해결되는 문제 아니야?’ 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벌을 이렇게나 크게 받은 줄 몰랐다. 하고 싶은 게 없는 죄는 참 가혹한 것 같다. 어딜 가든 길을 다 뚫려 있다고 하는데 지금 내 앞에는 낭떠러지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은 마음에 우울감과 허탈함이 또다시 몰려왔다. 그래서 한동안 고민이 있어도 학생상담센터에 차마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내 기분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쉬는 동안 나는 우리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과별 커리큘럼, 취업현황 등을 더 열심히 찾아봤다. 이제 마냥 어린아이처럼만 행동할 순 없고, 내가 먹고 살 길은 내 스스로가 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던 중, 언론정보학과와 무역학과에 관심이 생겼다. 커리큘럼만 봐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마치 지성인으로서 성장할 기회를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평소대로라면 거기서 그쳤겠지만 이번만큼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외활동 기자단이나 작성된 기사를 평가하는 일에 지원해서 합격하기도 하고, 복학하는 2학기엔 무역과 관련된 교양 수업을 듣기로 결심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지만 전과를 하기 전에, 그리고 남은 휴학기간동안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다시 용기 내서 학생상담센터에 진로상담을 요청했다. 다행히 내 얘기에 친절하게 귀 기울여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분을 만나 상담을 받으면서도 굉장히 울컥했다. 처음에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 분께서도 속도보단 방향이 더욱 중요하며, 내 나이에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절대 늦은 게 아니라고 말씀해주셔서 굉장히 기뻤다.
또한 요즘은 휴학여부로 취업에 리스크가 생기지도 않고 굳이 외적인 스펙을 쌓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을 덧붙여주셔서 더욱 기억에 남았다.
앞으로 불안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복학해서 학점을 만회한 후 전과하는 것만 신경 쓰며 살기로 결심했다. 이제 확실하게 진로가 정해졌으며, 더 이상 진로 때문에 머리 아플 일도 없을 거라 믿었다.
사범대 같은 경우엔 교생실습 사후 간담회에 참석하여 실습을 다녀온 선배들의 후기를 듣는 일종의 과행사가 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가 아닌 영상으로 올라온 교생실습 후기에 대한 감상문을 써서 제출하는 시스템으로 일시적 변경이 되었다. 애초에 나는 교사라는 직업엔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처음엔 귀찮고 시큰둥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과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다. 소감문도 한 단락만 작성하면 될 일을 세 단락 이상 작성하여 교수님께 제출하기도 했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학창시절에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어서 그랬던 건지 모든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자 노력하시는 선배님들이 대단해보였다. 사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지, 교육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마저도 관심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사범대를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올 4월에 지원한 mbti 집단 심리검사에서도 교육계열에 적합한 성격(온화하고 타인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씨)이 나왔는데, 딱히 거부감이 크게 들지 않았다. 단지 내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학과 그 자체가 아닌, 사범대를 나오면 무조건 임용고시에 응시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전공과 관련 없는 직업을 택할지라도 현실에선 ‘그럼 임용고시는요?’ 라는 얘길 들을까봐 겁도 나고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즉, 취업을 하려면 무조건 상경계열 쪽을 택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취업시장에선 사범계열을 우대하는 직종도 꽤 많이 보였다. 교육 컨텐츠 제작, 교육팀을 채용하는 공고에는 사범대 졸업생을 우대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제서야 첫 상담을 받은 날, 상담사분께서 전공이 다가 아니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말을 왜곡하는 행위는 싫어하면서 정작 타인의 말을 혼자 왜곡하고 상처받는 내 모습이 잠시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먼저 취업을 한 가족들, 친척들 얘기도 들어보면서 세상에는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개인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학교 간판이나 학과 졸업장을 가지고 있어도 크게 의미가 없다는 얘길 듣고, 내가 그동안 굉장히 편협하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에 갇혀서 스스로를 학대하기 바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뭐든 걱정하기 바쁘고 정작 열심히 해본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이제부턴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고 뭐든 도전하고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넘어지고 다치는 걸 두려워하기보단 실패를 경험삼아 성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오직 나뿐이고 나만이 내 삶을 결정짓고 평가할 수 있다. 난 내가 믿는 것보다 더 용감하고, 보기보다 강하고, 내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