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상담센터이용후기 공모전 장려상4 작품 '개인상담' N
No.1820033학생상담센터 이용후기
2021학년도 이용후기 공모전 장려상 작품
(학과 이름 등 개인정보를 제외함)
<나와의 대화>
“선생님, 저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겠죠?”
본 상담을 시작하기 전 기초상담에서 내가 했던 질문이다. 때로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했지만 사회에 순응하듯 24년을 살면서 흔한 한국의 20대로 자라난 나는 또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학교에서도 주어진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되어 살아왔다. 사실 나는 심각히 우울해져 일주일간 집에 있고 겉으론 두렵지 않은 척해도 실상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었는데 이게 나만 이상한 문제 같았다. 그래서 저 질문을 던져 다른 사람도 나처럼 그러기를 나만 이상한 사람이 아님을 전문가를 통해 신빙성 있는 증명을 받고자 했었다.
2021년 10월, 추석 쯤의 심각한 우울에 일주일을 휘몰아 치이고서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다. 후기에 익숙한 사회에 사는 나는 후기 하나 없는 영남대학교 어울림 홈페이지의 심리 상담신청을 허둥지둥 눌렀다. 전화할 용기는 안 되겠고 연락이 올 듯 안 올 듯한 기본만 갖춰진 홈페이지에서 속으론 연락을 내심 기다렸지만, 겉으론 오면 상담 받고 안 오면 지금처럼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신청을 눌렀다. 신청한 것을 잊어갈 어느 10월의 중순, 학생상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그렇게 나는 상담심리검사신청서를 작성하고 센터에서 사전 상담 예약을 잡았다.
상담심리검사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내가 그간 힘들었던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무기력증과 염세주의가 가장 힘들었다.
사람들이 보는 나는 바쁘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말해주지만 사실 나는 염세주의 때문에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 삶에서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힘들어했다. 염세주의가 내 삶의 기저에 깔린 것이라면 무기력증은 이벤트처럼 이따금 씩 나타났다. “나! 무기력 오늘도 왔어.” 하며 내가 밀어내도 무기력은 나를 침대로 밀어내고 나는 누워있는 반 송장이 된 냥 우울했다. 육체만 살아있지 정신은 죽은 채로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안하고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게 한 달에 한번 꼴로 나타났으니 나의 열정적인 삶의 모습과는 정반대였고,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도 지킬 앤 하이드처럼 지킬의 모습도 있지만 하이드인 내 모습도 나이니 내가 책임져서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두렵지 않은 척 연기도 하고 말도 또박또박 하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방어기제 였다. 어릴 적 소심하고 조용한 나는 사람들이 내 잘못이 아님에도 오해하여 내 잘못으로 생각되고, 20살 패스트 푸드점 아르바이트에서도 소심하다는 이유로 텃세를 당하며 능력 없는 사람으로 비춰주어 덕분에 내가 능력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피해 의식에 의해 나는 굳건한 사람으로 비춰지기를 노력했지만, 나의 기본 성향이 사람을 경계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인간관계를 하면서 내가 비난 받을까 봐 무서워하는 것이 나의 세 번째 고민이었다. 이렇게 나의 고민을 곁들여 ‘상담을 통해 도움 받고 싶은 부분’ 란을 채워갔다.
드디어 내가 무심결에 던진 심리상담의 첫 번째 단계인 기초상담이 시작됐다. 연구원님은 신청서에 적힌 ‘상담을 통해 받고 싶은 부분’과 ‘최근 스트레스 사건’에 대해 물어보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체적으로 적었는데 왜 한 번 더 말로 해야 되지? 싶었지만 그래도 여쭤보시니 글에 있는 그대로 내 얘기를 했다. 근데 한 번 더 말로 얘기를 하니 내 진심을 다 말할 수 있었고 살면서 눈물 쏟는 일이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은 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여태 참아온 아픈 순간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 염세주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기본으로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고 연구원님은 본 상담을 들어가기에 앞서 MMPI-2 검사와 문장완성검사를 메일로 받아 검사하면 된다 하셨다. 기초 상담 만으로 이미 나는 고민이 해결되는 기분과 내 속 이야기를 제3자에게 한 적이 없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 속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이때의 심정은 굳이 ‘본 상담 안 해도 되겠는데? 이걸로 만족하는데?’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본 상담이 진짜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MMPI-2라는 다면적 인성검사와 나름 재밌었던 문장 완성검사를 하고 검사 해설을 비대면 으로 진행했다. 역시 내가 생각한 대로 나는 평범하게 큰 문제없는 사람으로 심리 검사를 통해서 증명되었고, 이런 내가 오히려 총체적 난국이라 생각했다. 문제가 없는 문제 있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상담 선생님(이하 선생님)은 검사 해설을 도와주시며 나의 내면의 고민에 대해 다시금 꺼내는 시간을 주셨다. 검사 해설은 전체 항목이 정상으로 나왔지만 특히 특징적으로 나타난 것은 남성적 성향(기존 여성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여성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항목), 적대감, 알코올 의존성이었다. 술을 한 달에 한두 번 마실까 말까 하는 내가 알코올 의존성이 있다는 결과에 신빙성이 가지 않은 채로 해석 상담은 끝이 났다.
2주 후 또 잊을만할 때 본 상담에 대한 진행안내를 받았다. 일주일에 한번 정기적인 상담 약속을 잡고 상담센터로 방문하기로 했다. 첫 번째 상담에서는 내 고민과 앞으로 해결하고 싶은 방안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초상담, 검사해설에서 말한 것과 같이 무기력증, 염세주의, 타인에 대한 비난이 제일 힘들다고 했고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나는 친절하지만 냉철한 사람, 내면의 힘이 강해서 우울한 상황이 왔을 때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했다. 첫 상담에서는 내 고민 얘기에 대해 깊게 물으셔서 한 번도 나에게 그런 일이 없었던 나는 다소 어색하긴 했지만, 상담동안에는 비빌 보장의 권리도 있고 평소 가벼운 주제로 말하기는 좋아하기에 시원하게 다 털어버렸다. 그렇지만, 첫 상담에서는 내 얘기만 한 것이 어색한 채로 이 상담에 대해 갸우뚱하며 끝이 났다.
두 번째 상담이었다. 염세주의라 해도 삶은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본능이 이끈 건지 나는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 탓에 2주 만에 선생님을 만났다. 상담 도중 새로운 고민이 생겨난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선생님은 “자격증 같이 절대적인 수치보다 내가 작게 해왔던 것이 어쩌면 인생에서 더 중요해요.”라고 말씀해주시니 내가 두려웠던 것이 한층 걷어졌다. 그 외에도 삶에서의 휴식은 꼭 필요하니 일주일에 한 번 휴식 하는 시간을 줘라, 살아온 인생을 들으니 통찰력이 있고 매 순간 좋은 변화를 하려는 모습이 좋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를 기분 좋게 하시려는 상담인지는 몰라도 내면의 힘이 생기고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활력이 찼다. 첫 상담에는 내 얘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고 도움이 될까 했지만 일단 해보고 나니 나의 근본적인 가치관과 고민에 대해서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평소 사람을 경계하고 적대하는 나로써 나를 아무런 대가 없이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상담을 신청하고 두 번의 상담 만을 거쳤지만, 그 동안의 나는 염세주의도 조금씩 사라지고 삶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 내 감정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또 어색했던 부분이 내 감정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 상담에서는 “이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었어요?”, 상담을 마치며 “오늘 상담을 마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살면서 나는 감정에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신선한 물음이었다. 이렇게 나는 차츰 나아지고 있었다.
그 후 세 번째와 네 번째 상담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소통법도 배웠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게 무서운 나는 얼마 전 아르바이트에서 나에게 지적하는 사람에 대해 상처를 느꼈고 적대적인 반응을 했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은 그럴 땐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어떤 관계이건 내가 불편한 상황에서 내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은 나를 보호할 권리와 발언권을 잃는다고 하셨다. 상담을 통해서도 선생님에게 서운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며 그렇게 연습하자고 하셨다. 선생님은 “아이 메세지”를 가르쳐주시며 화나 불만이 있는 상대에게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며,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알려주셨다. 내 고민 중 하나가 상대방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딪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네 번의 상담이 끝이 났고,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이직한 탓에 헤어지게 되었지만 앞으로 다른 선생님과의 상담을 받아가며 내면의 힘을 더 기를 것이다. 선생님이 이직을 한다고 하셨을 때 사람에게 정을 잘 느끼지 않는 내가 살짝 뭉클해져 오며 아쉬운 것을 느끼면서 내가 4번만 선생님을 봤었지만 내 속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정을 많이 느꼈다고 생각했고, 선생님과 라포 형성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일상에서 노력해서 선생님을 보는 날에 이렇게 변했다고 말하고 싶었고 그런 시간을 통해서 직접적인 상담이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내가 변해가고 있었다.
겉으로 정상적인 나, 삶에서 큰 충격 없이 살았던 내가 누구나 겪을법한 무기력과 염세주의로 상담을 신청한다는 것이 나만 특별하게 힘든 척 한다고 생각하여 신청을 망설였지만 진심을 다해 상담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마주하며 내 고민이 진지하게 받아 들여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존중을 느꼈다. 또한, 자존심이 세서 나의 힘든 일을 거의 말하지 않는 내가 상담을 통해 이렇게 힘든 순간도 있었구나 하는 감정을 마주하기도 했고, 상담센터로 갈 때는 누군가 나를 알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도망치듯 상담센터를 들락날락 했지만 상담을 하면서 내 감정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내 얘기만 하고 오는 상담이 의미가 있을 까 하는 순간에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대부분 선생님이 들어주시는 과정을 통해 내가 존중 받는 느낌도 들었다. 가끔씩 완벽하게 주는 해결책이 아니라 고민에 대한 공감이 나에게 다가와 내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나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과정 또한 인상 깊게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니체는 ‘니체의 말’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인생을 완성 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스스로를 존경하라.”, “자신이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마음의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고방식과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찾아온 인생의 불청객 무기력증과 염세주의 덕분에 상담을 통해서 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상담에서 어떤 계기로 이러한 생각이 들었는지, 이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 묻는 질문을 앞으로의 삶에도 던져볼까 한다.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도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모두의 고민은 다 소중하기에 각자의 문제로 힘듦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상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확실한 것은 나를 알게 되는 것, 나를 대가 없이 믿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