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열기

 

학과활동소식

새마을국제개발학과 학생들과 함께한 이성근 교수님의 정년기념 특강 N

No.10578167
  • 작성자 윤정영
  • 등록일 : 2018.01.02 10:50
  • 조회수 : 958

이성근 교수님의 인생 후반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새마을국제개발학과 학생들과 함께한 이성근 교수님의 정년기념 특강

2017년 11월 30일

 지난 2017년 10월 30일 새마을국제개발학과 이성근 교수님의 정년기념 특강이 있었다. 영남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여 38년 간의 노고를 기억하고 교수인생에 대한 이야기와 은퇴이후 인생의 후반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통의 장이였다. 장년 인생의 반추 -정년을 맞이하며- 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날 정년기념 특강은 듣는이로 하여금 교수님께서 학과와 학교의 발전을위해 수고해주신 일화를 들을때 잔잔한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웃음과 눈물이 공존했던 정년기념 특강의 현장을 살펴보자.

----------------------------------------------------------------------------------------------------------------------------------------------------------------

■ 특강 전 이성근 교수님에 대한 감사인사 및 교수님 약력소개

 이 날 행사는 10월 30일 16시30분부터 17:45분까지 법정관 123호에서 진행되었다. 교수님께서 수 많은 가르침을 나누었던 강의실에서 정년기념 특강까지 하게된 것은 특강을 듣는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님에게까지 편안한 분위기였다.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님이자 정치행정대학 학장을 맡고계신 김정훈 교수님의 감사인사와 교수 인생동안 이성근 교수님과 많은 추억을 가지신 최외출 교수님의 인사말씀 그리고 제자이자 동료교수로서 감사의 인사를 올린 한동근 교수님의 감사인사로 행사를 시작했다. 이 후 새마을국제개발학과 학과장 김보영교수님이 이성근 교수님의 38년 교수인생동안의 약력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1234

▲꽃다발을 전달한 최외출 교수님, 공로패를 전달한 김보영 교수님과 이성근교수님의 기념촬영

 38년간의 교수생활 동안의 이성근 교수님의 발자취를 나타내는 약력은 특강을 듣는 학생들 뿐아니라 교수님들을 놀라게하기에 충분했다. 영남대학교 정치행정대학학장(04~06), 행정대학원장(09~11), 전략기획단 단장(05), 테크노파크조성 추진기획단 단장(96-98), 영남지역발전연구소 소장(08-10) 등 영남대학과 관련된 경력뿐 아니라 미국 Illinois 연구교수(84-86),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방문교수(91-92), 순총학원 관선이사장(16-현재) 등의 왕성한 교육연구활동과 저서 37편, 논문 185편, 학술발표 71편, 연구보고서 84편, 기타저작물 76편의 연구실적을 남겼다. 또한  대한지방자치학회 회장(04-05),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장(98-00) 등 학회활동 등을 통하여 새마을국제개발학과 뿐 아니라 영남대학교를 위하여 헌신한 노력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 행정자치부장관상 등의 포상을 받았다.

5678

▲이성근 교수님의 약력을 간단히 정리한 표

■ “장년 인생의 반추. -정년을 맞이하며-” 이성근 교수님의 정년기념 특강

 교수님께서는 “특강 이전에 저에게 전해주신 감사인사와 풍부한 약력소개 그리고 수 많은 학과 학생들이 참석하여줘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본 순서인 정년특강을 시작하셨다. 특강은 약 30여분간 ‘나는 누구인가, 영남대의 인연과 은혜, 영남대에서 한 일, 장년의 아쉬움, 남기고 싶은 말,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라는 소주제로 특강은 진행되었다.

<본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모든 새마을국제개발학과 학우들, 졸업생들도 교수님의 귀한 특강 내용을 듣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특강 전문을 올립니다.>

 너무 과분하게 우리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저에 대한 칭찬과 소개도 하고 또 저의 약력소개를 풍부하게 해주셔서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고별강연 강연이라 생각했는데 고별은 아직 비록 나이는 많지만 학교에 애정도 있기때문에 고별이라는 단어보다 나이가 차서 정년을 해야하기 때문에 정년을 기념하는 특강을 하면 좋겠다고 해서 고별 특강에서 정년 특강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2월에 정년을 하지만 아직도 마음과 몸이 정리가 안되어 사실은 특강하지만 특강준비도 안됐습니다. 평생있어보면 이런 강의는 처음이지 않습니까? 정년은 처음해보니까..(웃음) 그래서 ‘이 강의가 참 어려운 강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이야기한것처럼 처음해보는 강의이기에 어렵고 청중이 재학생들, 대학원생들, 교수님들로 다양해서 어렵고 마지막으로는 학과 학생들과는 잘 만나지 못해봐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좀 어렵지만 최대한 좋은 내용을 전달하는 강의가 되기 위해서 하루이틀전에 PPT자료를 준비해 봤습니다. 교육하는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청출어람 이청어람 : 청색은 남색에서 나왔지만 청색이 남색보다 푸르다.’ 라는 말이 최고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 강의를 듣고 지금도 우리 학과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교수님들은 저보다 더 대단하고 다른 젊은 교수님들, 강의를 듣는 여러분들도 저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더욱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인재가 되길 바라면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실 살면서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나를 한번 정리해보니까 크게 네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나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습니다. 초,중,고등학교는 영산에서 졸업했습니다. 영산은 3·1운동을 가장 격렬하게 외쳤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영산사람들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때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전국 8도에 대한 성향을 소개했는대 영산사람은 창녕사람이라 하지않고 영창녕인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중,고등학교생활을 지조있는 지역에서 졸업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산·진주 사람들에게는 ‘당신들은 대구에 가까우니까, 대구사람아니냐?’고 합니다. 창녕은 마산·진주보다 가깝지만 대구에 살다 영창녕인이라 소개하면 경남사람이라 합니다.(웃음) 그래서 사실은 영남의 호남의 차별도 있지만 같은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지역을 구분합니다. 저는 이번에 특강을 준비하면서 저를 한계인, 경계인이라 생각했습니다. 경남에 가면 대구사람이라고 하고 대구오면 경남사람이라고 하는 지리적·공간적 특성에 따라 다른 반응이 제 성격에 영향을 끼친것 같기도 합니다. 이 뿐 아니라 창녕에서도 흔치않은 성씨인 고성 이가여서 동네에서도 항상 주류가 아니라 한계인으로 살았습니다. 주체는 아니지만 뼈대있는 출신으로 저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좋아하는 글귀는 “원에서 끝은 시작이다.”라는 말입니다. 한번 되돌아보면 저는 영산농고를 졸업해서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72년에 초등학교 선생을 하다가 73년에 영남대학에 왔습니다. 이후 서울대학에 다녀와서 운 좋게 우리학과 교수로 오게되어 평생을 학과에서 보냈습니다. 우리 학과 이름도 지역사회개발학과에서 지역개발학과, 지역및복지행정학과, 지금은 새마을국제개발학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사회 발전 모형으로 학문도 진화발전하고 사회 수요에 맞춰 바뀐것 처럼 저는 팔자가 “원에서 끝은 시작이다.” 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행동양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점진적 개선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골에서 어릴적 생활을 보냈고 흑수저에 똑똑하지 않은 머리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제가 서른 살에 교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나의 능력이 어떻든 간에 노력하고 공부했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같이 영남대학교에 소속하고 영남대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점진적으로 발전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 동기부여를 하자면 나도 영남대학교 출신이고, 우리 최외출, 한동근 부총장도 영남대학교 출신이고, 김정훈 학장도 영남대 출신이고, 이정주 교수도, 이양수 교수도, 황승일 교수도 모두 영대에서 졸업하고 교수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본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발전적인 성취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인생버전을 설명하자면 삼심(三心)입니다. 이는 새마을국제개발학의 새마을정신1.0과 같습니다. 저는 근면,자조,협동이 몸에 베어 있습니다. 저는 엄청 부지런합니다. 제 아래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 박사가 나를 생각해서 글을 써보라고 하니까, ‘똑부인’이라고 합니다. 원래 똑부형 인간은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칭하는대 저는 똑부러지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표현했습니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부지런 한 제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새마을국제개발학과에 재학중인 여러분은 새마을버전대로 살면 성공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근면은 습관입니다. 저는 새벽형 인간입니다. 요즘 도시형인간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고 하는데 저는 새벽 일찍이 일어나 두 시간 정도 팔공산을 등산하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 다음에 자조, 이 것은 남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옛 말에 ‘빈곤은 임금도 못도와준다.’라는 말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다음 협동, 공유협업, 접속시대, 소유의 종말과 공유시대의 도래 등 협동은 시대적 화두입니다. 저 또한 영남대학에서 교수생활동안 평생 혼자하지 않고 협업연구를 해왔습니다. 저는 새마을버전이 제 몸에 벤 것 같은 것이 정년할 때가 되서 또한 학과 이름이 새마을국제개발학과로 바뀌었습니다. 이를 모두 정리할 때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리하며 배우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나는 영남대학과와의 인연은 서른 살에 교수로 부임하여 내년 2월에 정년퇴직하면 38년간 교수생활을 했습니다. 그전에 영남대학에 3년간 공부했고 여기에 더해 영남대학교에 적을 두고 미국 일리노이대학 파견교수, 서울대학교 파견교수, 연구원장 파견근무 기간 까지 포함하면 제 인생의 3분의 2를 영남대학에서 살았습니다. 정말 저에게 소중한 인연이고 감사한 경험입니다. 여러분께 이러한 차원에서 학생시절에 영남대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가진 가치를 자랑하지 못합니다. 영남대학교 학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행동하십시오.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38년간 영남대학교 교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영남대학교에서 교수생활 진심으로 만족합니다. 지금 학교가 제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퇴직하는 저에게 동료교수님들은 좋은 시기에 학교를 떠나신다고 말하십니다. 1980년대 때도 퇴직을 하시는 교수님께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사회는 순환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기운과 같이 흔들릴 수는 있지만 강건하게 이겨낼 것이라 생각하며 우리 영남대학교도 마찬가지로 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교수생활은 정말 안정된 평생직장이였습니다. 처음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공무원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도교수님을 공무원 진로보다는 교수진로가 전망이 좋다는 말씀을 듣고 진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선택이 저는 진심으로 행운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영남대학교에서 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교수생활 초기인 30대에는 학과에 학부생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교수로서 학생들과 막걸리도 마시고 연애상담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여기 앉아있는 최외출 부총장 전국 논문발표대회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최외출 교수가 4학년일때 3학년들을 대상으로 논문지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78,79학번 다섯 여명을 데리고 4~5년간 논문발표대회에 입상시킨 기억도 납니다. 우리 젊은 교수님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나는데 우리 학생들 중에도 다양한 외부활동에 교수님들에게 맞는 주제를 가지고 먼저 찾아가서 부탁한다면 적극 도와줄겁니다. 연구활동에 대해서는 후회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시킨 연구가 아닌 제 자신이 원해서 했던 연구들이 많았습니다. 그 다음에 기억나는 대내외 봉사는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장 취임 사진도 기억이납니다. 아프리카 알제리에 시티압둘라라는 과학도시에 15일간 컨설팅으로 간적이 있습니다. 정년 후에 제일 가보고 싶은곳이기도 합니다. 경북테크노파크는 전국에 17개가 있습니다. 영남대학교가 아이디어를 내고 주도하여 시작한 사업인 만큼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입니다. 이 외에도 세종시, 경북도청, 충남도청 입지평가위원장, 김천혁신도시, 원주혁신도시, 대구경북연구원, 등 새로운 이론개발보다 개발된 이론을 활용하고 정책이나 계획을 만드는 작업에 종사했습니다. 제가 지역개발에 새로운 기여를 한 것이 있나 찾아보니 H20 지역개발론으로 지역개발학계의 새로운 이론에도 기여를 한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지역개발학회 학술상을 받은 지역개발학, 문화관광부의 우수교양도서를 받은  성공전략협상 등의 저서도 기억에 남습니다.

 

 정년을 맞이하며 아쉬운 점은 건강이 제일입니다. 우리 교수님들과 학생들 모두 건강에 유의하길 바랍니다. 건강은 국가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가정에도, 자신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막스웨버가 학문의 길에 대해서 4가지를 제시할 때 학자가 되려면 건강, 머리, 돈, 기회 네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건강은 정말 자신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몸을 많이 학대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인생이 UN에서는 120세 시대에서 타임지에는 140세 시대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에 맞게 새롭게 나이를 재배분했습니다. 즉 건강하지 않고 생명만 부지해서는 의미가 없기때문에 젊을 때부터 건강에 유의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건강을 위해서라면 걷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관계가 중요한데 이 부분에도 조금 소홀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관계중심보다는 일(과업)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일을 하면서 만난 관계를 인연으로 살아서인지 일이 마치면 사후관리가 잘 안됐습니다. 그래서 학교 외적으로 일을 하면서 관계를 가진 사람들과는 인연이 많지만 학교 내로 관계를 형성하려 노력하지 않아서 영남대학교 교수님들과 친한 사람이 별로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정이 중요합니다. 일을 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는 바람직한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도 가정을 이루고 사실 것인데 사소한 약속이라도 약속을 중요시하고 살면 가정을 잘 돌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쉬운 것을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건강을 위해 걸어라, 가정을 위해 약속을 지켜라, 사랑은 먼저 붙잡아라.” 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사람도 경북대학교 교수인데 집사람이 저를 평가하기를 나는 잘해주는 것 같은데 “맨날 나랑 경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오늘 바쁘다 하면 나도 바쁘다하고 애좀 보라하면 나도 볼일있어서 집에 못들어간다고 했답니다. 서로 양보를 안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줬던 것은 월급통장이였습니다. (웃음) 그래서 사랑은 양보하고 붙잡는 것입니다. 저도 대학생활에 이성관계를 가졌었는데 붙잡지 못해서 다 놓쳤습니다. 

 

 처음에는 남기고 싶은 말 이부분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이것은 말이 쉽지 이루기 힘든 것들이 많기 때문에 간단하게 전하고 싶은 말만 남기겠습니다. 성공을 이끄는 대학생활의 제언에서 우리 학생들과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학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생각하는 인간, 목적이 이끄는 인간, 점진적 발전을 이루는 인간, 환류형 인간, 인성이 풍부한 인간’ 이 다섯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공유하고 싶습니다. ‘생각하는 인간이 되라.’

 

 저도 딸이 두명 있습니다. 저도 부모로서 제안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요새 젊은 청년들은 부모가 집주고, 밥주고, 옷주고, 용돈줘서 필요한게 없어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할 때 성취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일상생활의 생각부터 철학자의 생각까지 하는 학생들을 볼 때 생각이 있는 학생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헀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이야기 했습니다. 갈대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니까 현대사회에서는 유연한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자기 몸 가짐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생각, 용모, 행동에 대해 바로 잡고자 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 된 사람으로써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과학자, 철학자 들이 생각을 남다르게 했기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생각하기 제일 좋은 시간은 여러분의 통학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30년 전에 흔들의자를 샀는대 흔들의자에 앉아 생각하거나 새벽에 등산을 하며 생각을 합니다. 부모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영남대학교는 사립대학이고 여러분의 매학기 등록금을 대는대 굉장히 많은 수고를 합니다. “부모님을 생각하자.” 이것이 ‘언제 철들래?’로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는 목적이 이끄는 인간이 되자. 이것도 생각과 연결되는 이야기 입니다. 맹목적이지 않고 자신의 투철한 목적을 통해 방향성, 신뢰성, 실천의지가 중요합니다. 돈이 자신의 가치인지 학문이 자신의 가치인지를 정하고 평생 소중하게 담아야 할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게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인간에게 부족한 의지입니다. 제 형제자매관계는 일곱남매입니다. 아들 둘, 딸 다섯입니다. 조금만 한 눈 팔면 제 것이 모두 뺐깁니다. 여성들이 어릴 적 먼저성장하고 특히 바로 아래 여동생이 터프한 성격이여서 맨날 싸움을 하면 졌던 기억이 납니다. 한 눈 팔면 다 뺐기니까 의지가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즘은 자녀가 한 두명 뿐이기 때문에 해당이 되지 않을 지 모르겠지만 뜻을 가지고 실천하고자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입니다. 우리 영남대학교에 다니는 여러분 뿐 아니라 지금 이자리에 앉아 계신 교수님들도 다 천재는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범재들입니다. 평범한 보통사람이 성공하는 길은 단계단계를 거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단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발전이 됩니다. 그래서 천리길도 한 걸음, 첫 걸음이 중요하고 티끌모아 태산이란 말처럼 점진적 발전을 이루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옛날에 다이제스트를 읽어보니까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이 내가 보름 담배를 끊었는대 한 대 피워버리면 보통 일반 사람들은 다시 담배를 피우지만 다이제스트에 제안하는 것은 15일을 생각하여 비록 한 번 담배를 피웠더라도 이를 생각하면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납니다.

 

 넷째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환류하는 인간이 되어야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합니다. 나도 시험에 많이 떨어져보고 좌절도 많이 해보았습니다. 실패하면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잘못하면 그것을 개선해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잘하는 것은 더 잘하게하고 못하는 것은 줄여나가야 합니다. 근데 저는 평생 잘 못한것이 있다면 술은 잘 환류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웃음) 술은 마시면  ‘다음 날 안먹어야되겠다.’ 다짐하는데 잘 안됩니다. 태어나서부터 아는 사람을 생이지지라 합니다. 배워서 아는 사람을 학이지지라 합니다. 곤란을 겪어야 아는 사람을 곤이지지라고 합니다. 건강이나 술은 저는 곤이지지 경우에 조금 환류가 됐던것 같습니다.(웃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성이 풍부한 인간이 되자 입니다. 4차 산업시대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4차 산업시대에는 생각을 잘해야하고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인성입니다. 사람의 품성을 인성을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하나님 인성을 닮자. 또 지구촌상생인재양성사업단 같은 경우에는 지구촌 마인드를 가진 인성을 가지자는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 대학에서도 나보다 훨씬 좋은 학위를 가지고 도시 및 지역계획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으러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성이 조금 부족해서 1회 정책자문회의에 참석하고 부름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배움을 실천하고 써먹어야할텐대 인성이 바르지 못하면 이러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능력중에서 하나는 전문기술 능력입니다. 두번째로는 인본능력입니다. 인성이 좋고 사람이 좋아야합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인성이 나쁘면 같이 안만나려합니다. 그 다음에는 맥락능력으로 이어져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들을 기르기 위해서는 새마을정신 근면,자조,협동의 협동을 잘해야합니다. 협동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규칙을 준수하고 솔선수범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존중하면 협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신뢰가 쌓이는 것입니다. 내가 평생살아보니까 나는 무엇이 뛰어나냐 생각해보았는대 아까 특강전에 최외출,한동근 부총장님과 학과장이 감사인사를 전할때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나는 집에서 TV를 보다가도 애국가만 나오면 화장실에 갑니다. 그 때 우리 집사람과 딸들이 뭐라고 하냐면 “아버지 또 울러 화장실가신다.”고 합니다. 연속극 보다가도 조금만 이상하면 눈물이 자동으로 납니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데 그건 좋게 생각하면은 4차산업시대에(웃음) 좌뇌형 인간에서 우뇌형인간으로 감성이 풍부한 인간으로 발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애게 깐깐하다 똑부러진다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우뇌와 좌뇌 모두 이용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어쨋거나 좌뇌보다는 우뇌가 중요한 사회가 되었는데 영남대학교 새마을국제개발학과만큼 우뇌, 감성을 자극시키는 학과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산업화시대가되고 농촌의 공동체가 모두 해체되면서 그때의 가치가 다 소멸했습니다. 지금은 공동체적인 정신이 부족합니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에게 근면하고 스스로 훈련하며 자조하고 협동하는 새마을정신이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성에 중요한 덕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인생을 도약하며 아까 이력에도 나왔는데 순복음교단에 관선재단이사장을 하고있습니다. 대학교 대학원하고 순천에 순복음 총회가 있는데 부총장으로 있다가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신앙에 충성을하며 살자.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가야하니 하나님께 충성하자 생각합니다. 이번 주 주일에도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기도를 맡았습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심성이 엄청 부드러워집니다.(웃음) 다음으로 건강, 가정, 사랑에 아쉬웠던 점에 충실하자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여기 있는 교수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학문은 바다와도 같아서 모자란 곳이 없습니다. 학해무변의 넓은 바다에서 끝없이 항해하고 싶습니다. 제가 군함제 운문대회에서 시를 썼던 주제가 항해였습니다. 끝없이 먼 곳, 높은곳을 향해 꿈을 안고 점진적으로 인내성을 가지고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면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저의 소박한 마음은 상선약수의 기쁨입니다. 물처럼 살자. 물처럼 살면 나에게 소박하지만 즐거움과 기쁨이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자가 상선약수 했듯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 물을 좋아하는 사람.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역시 교수이기 때문에 인자보다는 지자를 택하게 된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우리 학부생, 대학원생들,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님들, 그리고 영남대학이 굳건하게 재정문제, 정원문제, 국가 정부의 변화에 따라 많은 정책 변화가 있지만 저는 영남대학교는 이를 능히 극복하고 이겨내 지속가능한 대학으로 발전하리라 믿고 오늘 연수만 떼운 38년의 교수를 아직도 퇴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년에 속하는데 저를 이렇게 과분하게 소개해주시고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와서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셔서 마음같아선 큰 절을 하고싶은데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학생들이 준비한 감사의 인사시간

 약 40분의 특강이후에는 학과와 학생들이 준비한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38년간의 공로를 기리는 공로패와 새마을국제개발학과 주야간 학생회가 준비한 감사증서 그리고 학생들이 손수 적은 롤링페이퍼 형식의 감사편지가 그것이였다.

9

▲감사편지를 전달하는 18년도 주간학회장 정원재(좌), 감사증서를 전달하는 17년도 야간학회장 강명호(우)

 학생들의 감사편지의 몇가지 감사인사를 소개하자면 “교수님이 수업해주신 정책계획론과 세계의 국토관리 수업으로 다른 수업에도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학과를 위해서 항상 신경써주시고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했습니다. (15학번 전준희)”, “교수님 수업때 행정, 환경, 계획부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5학번 고샤론)”, “교수님께 참된 학자의 길을 보았습니다. 저도 교수님같은 학자의 길을 걷겠습니다. (13학번 강민구)”. 3년간 교수님께 유익한 수업을 많이 들었습니다. 수십년간 학생들을 위하여 헌신해오신 교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늘 존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15학번 김상태)” 등 학생들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편지로 작성하여 더욱 의미있었다. 이 날 행사는 단체사진을 끝으로 마쳤다.

10

▲이성근 교수님 정년기념 특강 단체사진

 이번 이성근 교수님 정년기념 특강을 준비한 학생회 임원으로써 그리고 기사작성을 맡은 지구촌상생홍보단 학생기자로서 교수님의 38년간의 기록을 학생들 중에서 가장 많이 발표자료를 읽어보고 녹취록을 들으며 뜻깊은 가르침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 뿐 아니라 특강에 참석한 모든 학생들과 이 기사를 읽는 수 많은 사람들도 교수님의 가르침에 감사하고 인생의 교훈으로 삼아 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8년간의 교수생활을 이후에 있을 교수님의 인생의 후반전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다시한번 교수님께 온 학우들의 마음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지구촌상생홍보단 신요한 기자